외롭게 해서 미안해요. 우연히 시 한 편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텔레비전에 관한 내용이었지요.
그 시를 읽는데 그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붉은 장미처럼 화려한 표현이나 근사한 미사 여구는 없었지만, 잔잔하고 수수한 목련꽃 같은 감동이
있었 거든요. 읽고 난 후에도 오래오래 내 가슴에 남아 두고두고 저몄습니다.
그 시를 쓴 사람은 유명한 사람도, 등단한 시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생활에서
묻어나오는 시를 쓸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그분의 어머니는 늘 텔레비전을 켜두었답니다. 그 때는 왜 어머니가 보지도 않을
텔레비전을 켜놓고 졸다 깨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죠.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도 노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나이 만큼 먹어 그는, 꼭 그때처럼 텔레비전을 항상 켜놓고 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그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다 자라 자기 생활에 바쁘니 항상 말벗을 해달라고 조를 수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지요. 외롭고 쓸쓸하지만 차마 다가갈 수는 없으니 대신 텔레비전을 켠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않지만,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이 시를 읽고서야 비로소 나는 어머니가 왜 밤늦도록 텔레비전을 켜놓고 주무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곧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밤이 깊어지면 어머니 품에서 잠들 기도 했지요. 그러나 내가 점점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부터 방을 따로 쓰게 되었습니다. 나만의 개인적인 공간과 사생활이
필요했거든요. 나는 점점 어머니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에 글을 쓸 때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면 신경질이 났습니다. 혼자 두기를 바랐던 거죠. 친구들을 만나거나 일 때
문에 귀가가 늦어질 때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짜증을 부렸습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어린아이 취급을 하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무안해하며
살며시 뒤돌아섰습니다.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 밤, 어머니는 그렇게 빈집에서 텔레비전을
켰을 거예요. 나는 잠시 상상해보았습니다. 아직 젊고 건강하지만 나도 노인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아이들도 생기겠지요. 나는 온 정성을 다해 그 아이를 보살필
것입니다. 이윽고 그들이 성인이 되어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외로운 마음을
달래겠지요. 그 모습을 상상하자 어머니가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늦은 밤, 어머니나 아버지가 혼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면 가만히 곁에 다가가세요.
인사만 건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가까이 다가가 마음속으로 조용히
속삭이세요."외롭게 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대화를 하세요. 특별한 사건이나 큰 변화가 없어도 우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당신에게 일어난 소소한 일들과 요즘 고민하는 것, 생각하고 있는 미래의 문제들, 친구와 연인에
대한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마도 귀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결책까지 제시해줄
것입니다.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나의 가족이 기계에 불과한
텔레비전이 아니라 나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외롭도록 혼자 놓아두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먼 훗날 자신이 외롭게 버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가족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도록 하세요. 그의 외로움을 껴안아 주세요.
 나의 일상, 나의 사람, 나의 일들에 치여 미처 당신을 살피지 못했어요. 정말 미안해요. 세상에서 가장 큰 잘못은 사랑하는 사람을 외롭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몰랐습니다.
출처 : 당신이 있어서 참 고맙습니다.(이삭 지음)
감사 / 김동률 |